결혼과 동시에 취향과 평가는 절하되고 그저 참으며 살아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곪아 터지는 상처를 방치하기만 하는 열악한 시대는 끝났다.
옛날에는 결혼 생활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응당 참아야 하는 것이고, 힘든 티라도 내면 ‘당연한걸 힘들다 한다’ 는 눈길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사는 요즘 사람들은 꼰대를 배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수하고 감내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이 있는것이다.
결혼.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아니 ‘성인’과 ‘성인’이 만나 다시 한번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함께했던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나만의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 하지만 그런 빈약한 명분의 이면에는 ‘혼자 살면 외롭지않을까’, ‘자식이 없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바탕으로 깔려있다.
결국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신속하고 달콤한 방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꼼꼼히 싸여진 보급형 포장지위에 광고문구처럼 2배 빠르고 4배는 효과가 있는걸까?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소비자에게 2가지중 하나를 제공하면 된다고들 한다. 그들을 기쁘게 만들어주던지, 문제를 해결해주던지.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두가지 중 어떤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둘 다일까, 그저 과대 광고에 속아 생각없이 질러버리는 것일까.
물론 결혼에는 큰 목적이 있다. 바로 2세를 생산하는 것이다. 새일꾼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 성인 남성 1명과 여성 1명이 참여한다. 비판적으로 들리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결혼 한 것 치고는 가정의 조화나 평화보다는 유능한 일꾼 생산에 모든 자원을 쏟아붇는 방식을 택한다.
어떤 방식까지 써서 자식을 보증된 일꾼으로 거듭하게 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 그것에 사회에서 세뇌된 자식을 키우는 방법이고 그들에게는 최선의 부모가 되어주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모든 부모들의 염원이 이루어져 이세상에는 의사, 변호사, 사짜들만 남고 다른 직업은 모두 사라지면 어떨까. 그래서 아프거나 법적문제가 생겼을때 똥값에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다른 모든 업무는 뭐하나 제대로 처리가 안되면 좋을것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부모는 자식에게 또 다른 자식을 요구한다. 대를 이어 일꾼 생산을 이어갈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데, 자식이 자신과 같이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다면 큰 실의를 겪으며 시름시름 앓을 지 모른다.
결혼을 강력히 요구당하는 자식의 입장에서 얘기 해보자. 어릴때 부터 장및빛 결혼생활을 꿈꿔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있던 그들은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독립 투사처럼 굴하지 않고 온갖 고문을 이겨내고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그런 대단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남자나 여자는 어떤생각을 할까. 중매 결혼의 시대도 아니고,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결혼을 반대하는 시대도 아니다. 대부분 자유롭게 연애를 하다가 타이밍이 맞으면 결혼을 하게된다. 가장 사랑하고 운명적인 사람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인연이라고 끼워맞추겠지만 그것이 인연일지 큰 실수 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법한 행복한 결말과 같은 결혼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까. 집에서 마주하는 부모님의 생생한 결혼극장에 모른척 고개를 돌리고 다른 ‘형태’의 결혼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라 굳게 믿는.
결혼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론적으로 정확하게 결혼은 어떤것이고 어떻게 진행되며 어떻게 끝을 맺는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하하호호 행복한 결혼을 연출하고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짜면서 신세한탄을 한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것 이기에 그 변수는 크고 물론 결과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또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는 요소도 있기 마련이다.
결혼의 장점과 단점을 단순하게 나눠서 설명할 수 있을까? 못할 이유는 없다.
장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실대로 결혼에는 많은 장점들이 있다.
첫째로 ‘합법적’으로 가족을 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식을 낳아 호적에 올릴 수 있고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하게 가족 구실 잘 하는 모습으로 치장 할 수있고, 또 거기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두번째는 잘 꾸려진 가족에서 오는 안정감이다. 언젠가 늙고 쇠약해 질 때, 병간호 까지는 안해주더라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들여다 봐 줄 사람은 필요하다 생각하지 않는가. 인간의 외로움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잠재워 줄 안정감이 생긴다면 외로움도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세번째, 인생의 거대한 굴곡을 맞닥뜨릴 기회가 생긴다. 혼자 살아갈때도 굴곡은 있다. 하지만 두사람이 만나야 비로소 거대한 쓰나미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장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맞다. 왜 그런가 하면 결혼을 하면 싱글일 때의 몇 배에 달하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진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스토리들을 생각해 보라. 성공한 사람들은 늘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이 자신에게 큰 발판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물론 다수의 실패한 사람 의견은 들어볼 기회가 없지만.
또 무엇이 있을까. 재산이 된다는 점이 있겠다. 가족, 자식 혹은 안정을 재산으로 생각한다면 이 모든 것은 점점 팽창되고 축적 될것이다. 영원하진 않지만 그것을 누릴수 있는 기간은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도박으로 날려버리지만 않는다면.
사실 장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아는, 말하자면 입아픈 얘기가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단점은 어떨까?
자유가 없어진다는 점, 그리고 평생 공식적으론 한사람 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 결혼식 비용, 육아, 시댁 등등. 사실 장점으로 눈을 돌리는 것 뿐이지 모두가 무의식중에 단점들을 꼽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결혼의 단점에 대해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앞서 말했듯 옛날식 사고방식으로는 단점을 말하고 다니는 것이 좋지 않게 느껴진다. ‘너만 힘든거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그게 바로 결혼이다’는 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결혼을 불편하고 부패한 것으로 느껴도, 오랜시간 당연시 되다보니 누구하나 바로잡기를 꺼려한다. 괜히 얘기했다가 다들 잘 참고 있는데 나만 참을성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게 싫은 것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도 결혼과 이혼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는 풍조가 생겼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쉬한다. 다 힘들다는것은 서로 잘 알고 있기때문에 내비치지는 않는 우리네 세상살이다.
그리고 결혼은 생활이기 때문도 있다.
일상은 매일 변화한다. 롤러코스터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이 늘 한결 같을 수 없듯이 두 사람의 일상은 자주 혹은 매일 롤러코스터를 탄다. ‘좋았다 싫었다 한다’ 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어떨때는 참을 만 하다가도 또 어떨때는 더이상 못참겠다 하며 박차고 나가고 싶은것이다.
그 마음의 변화에 결국은 익숙해지게 되고 항복해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단점을 설파하기도 머쓱하고 그럴 기운도 안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모든것이 순탄하다 해도 가시가 걸린 것 같이 모른척 할 수 없는 찝찝함이 남는다. 왜냐하면 끝없이 타협해야만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정면으로 마주서는 것이기 떄문이다.
물론 이 모든것이 쓸데없는 추측이고, 그저 친하지 않은 사람한테 시시콜콜 단점을 늘어놓기 뭐해서 그럴수도 있고, 비혼자들의 결혼에 대한 환상을 지켜주고싶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사람사이의 일이므로 무조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딱떨어질 단점을 말해보라 한다면 그것은 1+1이 1이 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당연히 1+1은 2이다. 하지만 연인이었을 때 두사람이던 관계가 결혼을 하면 ‘하나’로 가족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파생되는 많은 단점들이 있다.
하나의 가족으로 엮이면서 작게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없어진다는 점 부터, 남이 결정한 일도 나의 책임이 된다는 점까지. 두개의 육체와 인격이 적절히 분리되어 있지 못하고 비좁은 곳에 한데 섞여 실험대에 올려지는 것이다. 하나의 육체와 정신을 가진 독립적 인간의 본성을 가뿐히 부정해 버리고 두 실험쥐를 하나로 만들려 하는 수술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잘’ 생활 해나가고자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둘사이에서 생겨나는 부딪힘을 해결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생활에서 오는 갈등을 혹 잘라내듯 깨끗이 없애버리고 다시는 재발 안하게 할 수 있을까. 진부한 얘기지만 해피엔딩은 없다. 살아나가야 되고 해결해야 하는 매일의 헛수고가 있을 뿐이다. 두명의 인간이 결국 영원한 해결점을 찾아 서로의 자유를 빌어주지 않는 이상 계속될 문제들.
두사람은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것을 양보하거나 포기하거나 아예 줘버리는 노력들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두사람 모두가 헌신을 해도 두사람 다 행복하지가 않다. 상대가 주는 것으로 만족스럽지가 않다. 헛된 노력이었나. 그렇다면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에게 완벽하게 맞춰주면 어떨까? 그러면 그 한사람은 100% 행복하게 된다. 과연그럴까?
인간은 특성상 행복할 수가 없다. 어딘가 결핍되있고 만족할 줄을 모른다. 두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것은 똑같이 작동될 것이다. 하지만 두사람의 수고와 노력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나? 보상을 원하지 않는 순수하고 헌신적이고 발전적인 사랑을 하면되지 않을까, 헛소리다.
결혼을 왜 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혼 전 계산도 안해 본 사람이 있을까.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받지도 않고 나혼자 사랑을 주고 돈도 벌어주고 평생을 헌신하고자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를 위해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 후가 결혼 전보다 나을것이라 기대하고 어떤것이든 얻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생각하면서 결혼한 사람도 있을까 궁금해진다.
결혼은 하나의 책임을 두사람이 반반씩 나눠 지는 것이 아니다. 두사람이 서로 힘이 되어줘서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 것 같겠지만 사실 두명 모두 같은 양의 일을 처리한다. 각각이 자신에게 부여된 일과 책임을 가지고 모여서는 그것을 이리저리 섞은다음 나누어서 다시 분담하는 것. 결국 섞나 안섞나 자기 몫은 하고 살게 된다는 얘기다.
아예 끊어내버리는 이혼을 택하지 않는다면 결혼에 출구는 없다. 한번 들어가면 어떻게 해서든지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내 책임이 아니라고 손을 떼버릴 수도 없고 노력을 안하면서 일이 잘 풀리기를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저 뚫고나가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 그런 노력들 없이 결혼 생활을 지속한다는 것은 그저 이기적인 욕심일 뿐이며 그런식으로는 유지될수 없다.
21세기의 결혼, 상대와 내가 모두 쿨하고 거기에 서로의 인증을 받았다 하더라도 진짜 ‘쿨’한 결혼생활은 없다. ‘쿨’한 이혼이 있을뿐. 결혼에 쉽게 가는길, 내가 원하는길, 벗어나는 길 따위는 없다. 출구는 없지만 그보다 더 나은 길은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아가고 또 나가가야 하는 것이다.